청춘의 씁쓸한 초상
작품은 신문 기자인 '나'와 에어로빅 강사인 '서미혜'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 그리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곧 이 작품에서 영화 속의 안토니오는 아버지와 대응되고 안토니오의 아들 브루노와 '나' 역시 대응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속 간질병 환자인 자전거 도둑은 역시 같은 간질병 환자인 서미혜의 오빠와 대응됩니다. 글의 전개는 이처럼 영화 속 인물들과의 대응을 통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다시 현재가 시간적으로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발생한 유년기 내면의 상처를 중심으로 소설 속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나'는 서미혜가 '나'의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타는 것을 목격합니다. '나'는 서미혜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을 떠올립니다. 영화 속의 상황은 '나'에게 하나의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켰는데 어린 시절 혹부리 영감에게 수모를 당하던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영화 속의 상황과 동일시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의 안토니오 리치와 브루노가 그리고 현실의 아버지와 '나'로 대체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서미혜 역시 영화 속에서 자전거를 훔친 범행이 발각되자 간질을 일으킨 젊은 청년과 간질 환자였던 자신의 오빠를 동일시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자책감에 젖는 것입니다. 이처럼 작품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아픈 기억들과 영화를 중첩시키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어린 시절의 상처를 형상화하고 이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이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극복하고 현재 자신의 삶을 정립하는 문제로 나아간다는 점에 그 주제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자전거를 훔치는 까닭
어린 시절 커다란 짐칸이 달린 자전거도 곧잘 타던 미혜의 오빠는 간질병이 있습니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아버지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훔친 가난한 도둑도 간질 발작을 합니다. 미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부터 ‘나’의 직업이 기자라는 것을 알았고 영화 자전거 도둑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 보는 듯 행동합니다. 이러한 미혜의 행동은 자전거를 훔친 후 자전거 주인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혜는 오빠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치유해 줄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함정이나 유혹이라는 의심이 들었더라도 상대방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아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다짐했던 것처럼 '나'는 여자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며 위안을 얻지만 동시에 서로의 어두운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헤어집니다.
수남의 도덕적 갈등과 선택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수록된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은 1979년 출간된 단편소설로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70년대의 각박한 서울의 세운상가 일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빈곤과 차별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년 수남이는 세운 상가의 전기용품 도매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인 영감님을 비롯한 세운상가의 사람들은 인간의 도덕성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기준으로 모든 일을 평가합니다. 주인 영감님은 수남에게 친절하지만 어린 수남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시킵니다. 또한 자전거를 몰래 들고 온 수남을 칭찬하며 수남을 옳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도 보입니다. 세운상가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간판이 떨어져 사람이 다쳤을 때도 상가의 사람들은 피해자의 안전보다 경제적 손실을 더욱 안타까워합니다. 수남이 자물쇠가 채워진 자전거를 두고 갈등에 빠졌을 때도 그들은 자전거를 들고 도망치라고 조언합니다. 자전거를 들고 도망친 수남은 문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행동을 두고 주인 영감님을 비롯 세운상가의 사람들은 오히려 잘했다며 칭찬합니다. 수남의 형은 돈을 벌어오겠다며 서울로 떠났다가 2년 만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형은 읍내에서 도둑질을 하고 그렇게 집에 돈을 가져옵니다. 얼마 후 경찰이 찾아와 수남의 형을 잡아가고 아버지는 화병에 걸려 몸져눕습니다. 서울에서 돈을 벌어 오겠다고 수남 역시 집을 나섰던 그때 그의 아버지는 도둑질만은 하지 말라고 수남에게 당부합니다. 아버지는 도덕성의 기준이며 수남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질책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수남은 이러한 아버지가 떠올랐고 갈등 끝에 세운상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