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문학
여행을 통하여 얻은 체험이나 견문 그리고 감상 등을 중심으로 기술한 영역을 사전에서는 기행 문학이라 일컫는다. 여행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과거에는 정보 전달이나 여행지의 사회문화적 연구와 비슷한 느낌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행이 쉬워진 현대에 와서는 정보나 학술의 목적보다는 주로 일기와 닮은 형식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재가 무궁무진하고 취미 삼아 쓰는 사람도 많지만 그럼에도 잘 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행문은 첫째 언제 떠나고 언제 돌아온다는 노정이 밝혀져야 한다.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가는가의 목적과 목적지도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보고 듣고 겪었는가의 견문 체험적 내용도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이 어떻게 느꼈느냐의 감상과 객창감이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기 위한 문장은 산문이나 운문 형식이 될 수 있으며 또 산문에 시가 삽입되는 형식이 될 수도 있다. 문장의 형식은 크게 구애받을 필요 없이 수필이나 일기 편지 등도 물론 가능하다. 다만 기행문학이라고 할 때에는 이러한 형식적 요소보다 기행을 통한 감상 등의 방향이 중요시된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염두해야 한다. 더불어 자조문학적인 성격의 작품이어야 함과 동시에 표현의 문학성이 인정되는 맥락이어야 함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벽과 편견에 대한 성찰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 이 작품은 신영복이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의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느낀 바를 쓴 기행적 수필이다. 이스탄불은 먼 곳에 있었습니다를 시작으로 작가의 글은 시작된다. 거리로는 로마나 파리보다 가까웠는데도 나의 의식 속에는 훨씬 더 먼 곳에 있었습니다.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비잔틴이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흑해처럼 몽매하기만 하였습니다. 작가가 전하는 이러한 맥락은 그동안 자신이 이스탄불에 대해 무지했고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유는 중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만든 두 개의 장벽 때문이다. 이 장벽으로 인해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고 본문에서는 전한다. 그는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글쓴이가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들의 관용과 관대함 그리고 공존의 도량이었다. 터키의 역사에서 이단에 대한 박해보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대함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고도 전한다. 서구적 사관으로 이슬람을 인식했던 자신의 태도 또한 반성했다. 이슬람 문화를 통해 자기와 다르거나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과 관용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는 장벽을 넘어서야 함을 필자는 깨닫는다. 신영복의 이 같은 기행적 수필에서와 같이 정보 전달을 비롯 자조적 성격이 깃들어져야 비로소 궁극의 수필 기행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기행의 성격을 띤 소설 무진기행은 물질문명의 확산과 도시화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환상적 공간으로 도피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드러낸 소설이다. 서울에서의 삶으로 상징되는 현실적인 가치와 욕망 그리고 무진의 모습의 이상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주인공 윤은 갈등한다. 윤의 고향인 무진은 안개가 자주 덮이는 곳으로 서술된다. 안개는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게 하는 속성과 더불어 작품 전체를 허무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이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대의 시대상과 연결되는데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면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 불투명하고 혼란한 시대를 나타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무진이라는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상상해 낸 허구의 장소이다. 이를 기반으로 작품을 읽을 때 무진이 주인공 나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소라는 점을 염두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돈과 성공을 향해 도시로 나가는 상황을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듯 소설은 주인공 윤이 서울에서 무진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여로형 구조를 통해 현대인의 내적 갈등의 양상을 세련된 문체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