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의식세계 반영
소설 꺼삐딴 리는 1962년 7월 사상계 109호에 발표하였다. 그 해 동인 문학상까지 수상한 작품으로 이기주의자이며 기회주의자인 전형적 인물을 통해 사회 지도층 인물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단편 소설이기도 하다. 전광용은 작가로 출발하였으나 신소설의 연구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결과 국문학자로서의 독보적 업적 또한 쌓았다. 그는 소설가로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쳐 사회의식이 투철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냉철한 사실적 시선을 바탕으로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끈질긴 생명력을 추구하려는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작가는 분단의 비극을 비롯 우리나라가 처한 정치와 경제 문화적 상황을 등장인물을 통해 적절히 형상화시킨다. 이는 작가가 현장 답사를 통해 작품 소재를 충분히 취하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 또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문장 표현은 간결하고 정확하다. 소설 꺼삐딴 리에서도 이러한 특징 모두를 잘 살리고 있다. 작가는 뛰어난 변신술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주인공 이인국과 지조도 신념도 없는 이인국 그리고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인국이란 인물을 통해 철저한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10개의 장절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과 끝장이 현실이고 8장은 주로 과거의 회상으로 역전적 구성을 지닌다. 이런 구성에서는 시간문제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작품 속 이인국의 회중시계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인국에게 회중시계는 인생의 반려자와 같다. 제국 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수상품으로 일제 강점기와 소련군 점령기 그리고 6.25 전쟁 등과 관련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신과 함께 살아남은 분신 같은 물건이다. 이인국이 회중시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며 그의 인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약삭빠르게 변신하는 속물근성은 어느 시대 그리고 어느 사회에나 널려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지도층들이 역사 발전을 저해하면서도 주도해 나가는 참담한 현실을 작가 전광용은 소설 꺼삐딴리에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편 새로운 도덕의식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소설 꺼삐딴 리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개인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종합 병원 버금가는 명성과 수입을 올린다. 그의 병원은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청결과 다른 병원에 비해 두 배나 되는 비싼 병원비를 특징으로 하여 성장한다. 환자들을 선별해 받는 까닭에 그의 병원을 이용하는 대상이 일제 때는 주로 일본인들이었고 지금은 권력층이나 재벌에 속한 축들이 대부분이다. 이인국은 미국 대사관 브라운 씨와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애지중지하는 18금 회중시계를 꺼내 본다. 여기서 이야기는 30년 전 제국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돌아가며 그의 전력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에는 철저한 친일파로 행세하여 아이들을 일본인 소학교에 보내고 가족들에게도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한다.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정도의 처신을 보인 이인국은 결국 국어 상용의 가(家)라는 액자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인들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워 형무소에서 풀려난 사상범을 냉정하게 외면해 버린다. 광복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자 이인국은 변신을 꾀한다. 하지만 치료를 거부했던 사상범 춘식이의 밀고로 러시아인에게 붙잡혀 아끼던 회중시계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힌다. 빠져나갈 방도를 찾으며 러시아어를 부지런히 공부하다 마침 의료 요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이인국은 실력자 스텐 코프에게 잘 보여 아끼던 회중시계를 돌려받은 것은 물론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인국은 1.4 후퇴 때 월남한 후 또다시 변신하며 친미 행동으로 일관한다. 영어를 부지런히 배우고 능란한 처세술을 발휘하여 병원의 고객을 권력층과 재벌과 같은 부유층으로 제한하면서 놀란 만한 발전을 이룩한다. 미국인의 도움으로 딸까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데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발언으로 한편 커다란 실망을 느낀다. 딸을 만나기 위해 귀중한 골동품을 미국 대사관에 선물하고 국무성을 통해 초청비자를 허락받아 돌아오며 그는 생각한다. 그 사마귀 같은 일본 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고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고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라고 하는 데서 그의 인물됨이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 박영준의 모범 경작생
일제의 잔혹한 수탈 정책으로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는 1930년대 농촌 현실을 그리는 소설 모범 경작생은 주인공 길서의 이기적 행위를 잘 그려냈다. 주인공 길서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로 성두의 여동생 의숙과 사귀고 있다. 그는 군의 농사 강습회 요원으로 선발되어 서울로 떠나고 이러한 길서를 동네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서울에서 돌아온 길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농사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보다 시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말로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산다. 길서는 면장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동네 사람들의 호세를 올리는 데 합의한다. 면장의 제안을 수용한 덕분에 길서는 시찰단으로 뽑혀 일본으로 갈 기회까지 얻는다. 동네 사람들은 흉년으로 어려우니 도지를 감해 달라고 지주에게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나 오히려 호세가 크게 오른 것을 알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길서가 친일 관리들과 한패가 되어 과중한 호세 징수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길서는 자기 논의 모범 경작생이라고 쓴 말뚝이 쪼개져 길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길서는 의숙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를 못 본 체하고 격분한 성두가 길서를 찾자 길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도망간다. 작품 속 길서의 이기적 행위는 서사의 기본 축을 형성한다. 또한 일제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친일 인사들과 부패한 관청 더불어 과중한 세금을 앞세운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대해 작가는 풍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설이든 현실이든 이인국이나 길서와 같은 인물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는 법.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을 도모해 온 위인들 또한 많았으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