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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신이었고 너는 머저리였다.

by 깊은쌤 2024. 7. 20.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형과 아픔의 원인도 모르는 동생. 우리는 그들을 병신과 머저리라 부른다.

상처 마주하기

1966년 창작과 비평 가을 호에 발표된 단편 병신과 머저리는 12회 동인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작품은 6. 25 전쟁을 체험한 형과 전쟁 미체험 세대인 동생이 겪는 상처를 형상화하였습니다. 형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비인간성을 체험하면서 좀 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 상처를 소설 쓰기를 통해 되짚어 봅니다. 한편 동생은 이별을 통보한 연인을 붙잡지 못하고 자신의 억눌린 욕구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표출하는 형과는 달리 동생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형은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지만 동생은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형이 쓴 소설을 몰래 읽으며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인물들의 상처를 보여 줌과 동시에 상처 극복의 실마리가 되는 주요 요소는 작품 속 형의 소설입니다. 이렇듯 6. 25 전쟁 체험을 생생한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형과 그러한 체험의 절실함도 없으면서 무기력하게 스스로를 포기한 동생을 우리는 병신과 머저리라 부릅니다. 이 소설에는 4. 19의 가능성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소설 병신과 머저리라는 제목에는 1960년대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자조적 반성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액자 소설이라는 양식을 통해 두 형제가 서로의 아픔을 마주 보며 자신을 성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학 작품에서 그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시대적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액자 소설

액자 속에 사진이 들어 있듯 하나의 이야기 내부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 소설이라 말합니다. 대부분의 액자 소설에서는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연결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액자 외부의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거나 다른 이에게 들은 이야기 등을 삽입함으로써 사건에 신빙성을 더하거나 어떠한 의문에 대한 해답 혹은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또한 액자 외부와 액자 내부의 이야기는 상호적인 역할을 하며 등장인물의 아픔과 극복 과정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기도 하는데 보통의 경우 외부 이야기가 액자의 역할을 하고 내부 이야기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나 핵심 내용이 됩니다. 또 이야기 밖에 또 다른 서술자의 시점을 배치함으로써 이야기에 근거를 더해 주거나 맥락을 다각적으로 전개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액자 소설로는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김동리의 무녀도 그리고 현진건의 고향 등이 있습니다.

영화의 바탕이 된 작가의 소설들

전라남도 장흥 출신의 소설가 이청준은 서울대 독문과 재학 시절 사상계에 단편 소설 퇴원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등단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작가 이청준은 작품마다 새로운 문제의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억압적 권력과 개인의 문제를 탐구하였습니다. 또한 언어의 진실과 말의 자유 그리고 고향과 어머니 마지막으로 예술과 장인의 삶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인간적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였습니다. 1967년에는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 문학상을 받았으며 1978년에는 잔인한 도시로 제2회 이상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1985년에는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청준의 소설 중에는 유독 영화화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병신과 머저리는 영화 시발점으로 재탄생했으며 석화촌과 이어도 그리고 장편 낮은 데로 임하소서는 각각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이청준의 소설은 임권택 감독과 만나며 더욱 유명해졌는데 연작 남도 사람은 서편제와 천년학으로 그리고 노모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축제는 동명의 영화 축제로 영화화되어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서편제는 국내 최초 100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벌레 이야기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단편 조만득 씨는 나는 행복합니다로 영화화되어 관객의 호평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청준의 작품이 꾸준히 영화화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높은 작품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