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발탄
북에서 부유하게 살던 철호 가족은 북한의 공산주의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하자 월남하여 남한의 해방촌에 살게 된다. 철호는 계리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그는 현실에 순응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성실한 사람임과 동시에 병든 노모를 모시고 온전치 못한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젊은 가장이다. 노모는 전쟁의 충격으로 "가자!"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병자이며 누이동생 명숙은 미군 병사를 상대로 몸을 판다. 부상으로 제대한 아우 영호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양심이나 윤리 따위는 아랑곳없이 살다 결국 은행 강도가 되어 수감된다. 철호는 동생의 일로 경찰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만삭인 그의 아내가 출산을 하다 죽고 만다. 아내의 죽음을 접하고 병원을 나온 철호는 넋이 나간 채 걷다 우연히 치과를 보고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충치를 모두 뽑아 버린다. 철호는 자신에게 생긴 비극적 상황으로 정신적 혼란을 느끼며 택시의 행선지를 이리저리 바꾼다. 이런 철호를 보며 운전사는 오발탄과 같은 손님이 탔다고 투덜거린다.
오발탄과 한국 영화사
1961년 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발표되었다. 제작자는 조명 기술의 개척자로 이름을 떨친 조명 기사 출신 김성춘이다. 작품은 상영되자마자 매스컴과 평론가들로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았으며 관객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재래식 멜로드라마에 식상했던 관객들은 모처럼 신선한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야기 중심 즉 스토리텔링과 값싼 감상주의나 통속적인 해피엔딩에 신물이 났던 관객들에게 무언가 다른 영화를 보여 준 것이다. 6. 25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아 사람들은 전후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빈곤은 사람들을 짓눌렀고 자유당 말기의 세상 모양은 암담했으며 구원이 없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실향민 가장의 심정과 가족의 암울한 정황이 흑백 톤으로 묘사되었다. 이야기만으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유현목 감독의 예리한 감각과 영상은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암시했다. 그는 쇼트를 이야기의 설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영상으로 상황과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다. 전작 잃어버린 청춘에서 범상하지 않은 영상의 몽타주를 보여 준 유 감독은 오발탄에서 유감없이 그의 창조적 감성을 발휘하였다.
오발탄을 통해 본 소설과 영화의 특성
소설에서 주인공 철호 중심으로 전개되던 모든 사건과 심리의 추이가 영화에서는 영호 중심으로 전이되면서 상대적으로 철호의 위상이 축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작에는 없던 보조 인물들이 다수 새롭게 등장하여 원작과는 상이한 새로운 서사 패턴을 창조하는데 일조했다. 소설의 영화 변용 과정에서 발견되는 이 두 가지 양상은 오발탄이라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을 해석하는데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와 소설의 장르적 속성과 매체 미학적 특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징표로도 상징화될 수 있었다. 문자에서 영상으로의 매체적 전이는 우선 소설의 시점을 객관적 시점으로 바꿔 놓았다. 이는 소설의 인식 범위 안에 국한되어 있던 이야기 외에 새로운 요소들을 첨가하게 된다. 문자만으로도 충분히 시간 변조를 일으킬 수 있는 소설에 비해 화면이라는 평면 공간을 서술의 근간으로 삼는 영상물에서는 그러한 시간 변조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적 매체에서는 언어적 시간 표시에 상응하는 새로운 장면들을 갖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상이 발휘할 수 있는 역동적인 움직임의 효과를 위해 인물이나 사건의 동적 그리고 외적 움직임을 부각할 만한 새로운 이야기 요소들도 삽입한다. 이렇듯 소설의 영상화란 동일한 이야기의 매체적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다는 것은 문자로 전달되던 이야기를 단지 배우의 실연과 카메라의 운용으로 가시화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의 전이 혹은 차용이 아닌 추상과 관념의 세계에 대한 영상적 구상으로의 전환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상을 영상으로 추상을 구상으로 바꾸는 것이므로 거기엔 소설의 질서에 대한 구속보다는 오히려 영화적 질서로서의 재정리와 새로운 텍스트의 구축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매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물체 또는 그런 수단으로 정의되어 있다. 작가 이범선이 소설 오발탄을 통해 전달하려는 바와 영화적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감독의 방향이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표현하려는 매체와 당시 사회의 대중문화적 성격을 고려해 볼 때 다른 결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매체든 그 매체가 갖는 장점들이 분명 다르므로 독자나 관객은 날카로운 비평보다는 창작자들이 잘 차려 놓은 작품을 넉넉히 감상할 수 있는 아량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이 펼쳐 놓을 가치관의 세상에 또 한바탕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