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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편의점 캔커피를 뜨겁게 갈망할 때

by 깊은쌤 2024. 6. 4.

눈길을 파헤치며 짜장면을 배달해 온 남자는 40대의 중년이었다.

현대인의 삶 풍자

새해 첫 출근 날 눈이 너무 많이 쌓인 것을 발견하고 남자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출근에 대한 상사의 압박과 불안감을 느끼며 결국 출근길에 오른다. 회사를 향해 나아가며 쌓인 눈을 치우다 남자는 배고픔을 느끼고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는다. 남자는 계속 눈을 파헤치고 그러던 중 휴대전화 벨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삽질을 하다 누군가를 발견한다. 그는 다름 아닌 같은 직장 유 대리다. 이를 알고 놀란 남자는 그 옆에서 서서히 잠이 든다. 작품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설정하여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는 흔히 눈이 내린 풍경을 환상적이거나 순수한 이미지로 생각하는데 작품에서의 눈은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주인공에게 시련이고 장애물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조차 힘든 상황임에도 회사로 가야 하는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삽으로 눈을 파내며 출근한다. 이러한 설정은 맹목적인 목표를 위해 반복적인 노동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작품의 결말에서는 여운을 남기는 방식을 통해 현대인의 삶과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극대화하고 있다. 단편 스노우맨이 실려 있는 <당분간 인간>은 8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집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에는 오로지 당분간만 인간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 즉 인간답게 살아가기가 좀처럼 어려운 현대인들의 모습을 다루면서 직장 문화와 육아 그리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 등을 풍자하고 있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

소설 스노우 맨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대리나 과장 또는 부장 등 회사 내의 직급 정도로만 불린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노동하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고유성을 표현하거나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그들 모두는 오로지 자본주의와 노동 시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부품이나 숫자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작가는 폭설이 내려 도시의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인공이 삽을 들고 눈을 퍼내며 출근한다는 점은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다. 한편 중국집 배달부가 눈길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에게 짜장면을 배달하는 장면은 희극적 효과를 일으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 장면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환기하며 눈을 헤치며 출근해야 하는 상황의 모순을 일깨워 준다. 소설 속 동그란 눈과 웃는 입 모양을 한 눈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만 하는 김대리와 같은 회사원의 처지와 닮아 있다. 이는 현대인들이 정작 인간적인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비판적 인식도 드러낸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남자가 발견한 얼어붙은 유대리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람을 기계의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현대 사회에서 스노우 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비극을 상징한다.

지금은 과로 사회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을 차지해 왔다. 과로사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번아웃 신드롬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나를 비롯 많은 사람들은 고단하다. 2018년 7월에 이르러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휴가 사용이 권장되는 모양새로 점차 나아지고는 있으나 워라밸 즉 일과 개인의 삶 사이에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요즘 들어 '쉬엄쉬엄 하세요. 건강도 챙겨가며 일하세요.'와 같은 인사치레 따위의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말이 왜 위로가 되지 못하는지 나는 안다. 때때로 우리는 상대의 안부를 챙기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상대가 나에게 주는 이득을 고려해 그것이 지속 가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의 격려가 훨씬 크다. 현대인들이 가진 고질적이고 이기적 행태다. 휴식을 취하며 적당선으로 일해 버릴까. 그럼 곧장 여기저기 불만이 쏟아진다. 빠른 퇴근을 희망하며 출근 준비를 한다. 문밖을 나선 것도 아닌데 이미 난 초주검이 된 듯 내 몸은 천근만근이다. 이런 날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의 함박눈이 와 줘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내 결근의 타당한 명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