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
17세기 후금은 만주 지역에서 세력을 넓혀 가며 조선을 압박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명을 섬기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후금은 오랑캐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주었던 명은 후금 토벌에 나서며 조선에 출병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조선은 힘이 막강해진 후금에 맞서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금은 1627년 정묘호란을 일으켜 조선과 형제 관계를 맺고 1636년에는 국호를 청으로 고친 후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조선의 조정에서 청에 맞서자는 척화론이 들끓었고 청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것이 병자호란입니다. 이때 최명길은 주화론의 입장에서 김상헌은 척화론의 입장에서 풍전등화의 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상반된 사상과 현실 인식으로 대립하였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온 청을 맞서기에 국력이 너무 약했으므로 최명길은 청과의 화친을 통해 조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청과의 화친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신을 갖게 된 것은 대의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과거에 오랑캐였던 청이 조선에게 형제 관계를 넘어 군신관계까지 요구하는 상황에서 김상헌은 청에 맞서 싸우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한산성 안에서의 위기 상황에서도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적과 싸우려는 의지를 굳건히 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상헌은 국가의 대의와 근본을 지켜나가는 일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한산성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
작가 김훈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둘러싼 치욕의 역사를 다룬 소설로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고통스러운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당시 조선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았습니다. 남한산성 안은 크게 두 계층으로 나뉘었습니다. 상류층의 관심은 명에 대한 대의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청이라는 현실을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인조를 가운데에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하는 주화의 최명길과 척화의 김상헌이 그 대표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급 군졸들과 서날쇠 등으로 상징되는 민초들의 관심은 당면한 현실에서 자신들이 살아남는 것에 있었습니다. 모든 대의와 명분이 무력해지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민중들은 악전고투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처절한 항변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남한산성 밖에서는 거대한 폭력이 압력을 가해 오고 있습니다. 조선의 임금은 이에 굴복하고 청의 칸에게 절을 하며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굴욕적인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처럼 작가는 남한산성 안과 밖의 갈등을 중첩시키며 각각의 시각을 다양한 서사로 풀어놓았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현실이라는 것이 자존과 영광만으로 성립되기 어려우며 삶의 영원성만이 그 치욕을 덮어 위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소설 남한산성과 영화 남한산성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은 원작 소설을 화면 속에서 섬세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일부 대목은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상헌의 자결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김상헌은 조정이 항복을 택하자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지만 구조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김상헌은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의 길이 무엇이냐? 그것은 모든 낡은 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열린다."라는 말을 남긴 채 장렬한 최후를 맞습니다. 자기 자신과 제도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김상헌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감독의 해석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전쟁의 패배를 딛고 일어서려는 생명과 희망의 분위기를 소설과는 다른 장면으로 배치하며 인상적으로 펼쳐 놓습니다. 민들레가 핀 봄날, 폐허가 된 초가집을 다시 세우는 민초들의 삶은 평화롭습니다. 특히 친구들과 연을 날리러 뛰어가는 나루에게 대장간 일을 하던 날쇠는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라고 말합니다. 이를 두고 김훈 작가는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인간의 희망과 사랑 그리고 미래가 들어 있는 아름다운 대사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