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현진건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떠오르는 청년 작가가 된 현진건은 마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거의 전부를 사실주의 문학 작가로 살았다. 사실주의란 자연이나 현실 생활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꾸밈없이 그려 내는 예술적 경향을 말한다. 이것은 19세기 중엽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 사조로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그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는 태도를 보인다. 현진건은 <개벽>에 운수 좋은 날과 불 그리고 사립 정신병원장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조선 문단>에 B사감과 러브 레터 등을 발표하면서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관심을 보였다. 이 소설들로 그는 1920년대 가장 뛰어난 사실주의 단편 소설가로 자리를 굳혔다. 그중에서도 특히 1920년대 사실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운수 좋은 날'은 인력거꾼 김 첨지의 하루 생활을 통해 가난에 허덕이는 하층 노동자의 삶과 기구한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준 명작으로 꼽힌다. 또한 이 작품의 결말에 나타나는 극적인 반전 기법은 'B사감과 러브 레터'의 결말에 나오는 반전과 더불어 소설 기교면에서 한 시대를 앞설 정도로 아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시 말해 현진건은 식민지 조국의 슬픈 현실을 보여 주고 그 현실의 문제점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사실주의적 문학 기법이 적절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나라 근대 문학 초기에 김동인 및 염상섭 등과 더불어 단편 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나아가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서 우뚝 설 수 있었다.
운수 좋은 날 작품의 탄생 배경
일제의 식민 정책은 1910년부터 강화되었다.특히 일제는 1912년부터 1918년까지 7년여에 걸쳐 식민 통치의 기초 작업으로서 조선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수많은 백성이 토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렇게 토지를 잃고 경제적으로 몰락한 중소 지주 계층 및 자작농과 소작권을 잃은 소작인들은 농촌을 떠나야 했다. 이들은 인근 도시 지역의 일용 노동자가 되거나 식민지 산업의 기초 시설을 다지기 위한 철도 부설, 항만 개발, 도로 공사, 수리 사업 등의 공사장 인부가 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걸인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도시 빈민층이 생겨나게 되었다. 반면 조선 총독부는 전 국토의 약 40퍼센트의 해당하는 전답과 임야를 차지하는 대지주가 되었다. 현진건의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은 1920년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소설이다. 소설은 일제 수탈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은 새로운 계층 형성의 배경을 알려 주고 있다.
김첨지의 하루
인력거꾼 김 첨지는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 하다가 이 날따라 운수 좋게 손님이 계속 생긴다. 그의 아내는 기침으로 쿨룩거리는 것이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굶기를 먹다시피 하다가 열흘 전 조밥을 먹고 체하여 병이 더 심해졌다. 돈이 벌리자 김 첨지는 한잔할 생각과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 주고 세 살 먹이 자식에게 죽을 사 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기뻐할 때 또 손님이 생겼다. 그러나 아침에 오늘은 나가지 말라는 병든 아내의 생각이 나서 주저하다가 일 원 오십 전에 남대문 정거장까지 가기로 한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다리가 가뿐하다가 집 가까이 오자 다리가 무거워지고 나가지 말라던 아내의 말이 귀에 울렸다. 그리고 아들 개똥이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여 자신도 모르게 멈춰 있다가 손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발은 가벼워졌다. 손님을 남대문 정거장에 내려 주고는 근처를 배회하다가 운 좋게 또 한 손님을 태우고 인사동에 내려 준다. 황혼이 가까워 올 때 김 첨지의 벌이는 기적에 가까웠으나 그는 불행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 집에 가기가 두려워진다. 그럴 즈음 친구 치삼이를 술집에서 만나게 되어 같이 술을 마시게 되고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자 치삼이가 그를 말린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었다는 주정과 함께 돈에 대한 원망도 하다가 치삼이에게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치삼은 김첨지에게 집으로 가라고 하지만 그는 거짓말이라며 기어이 술을 한 잔 더 한다. 이후 설렁탕을 사들고 집으로 가지만 안에 들어서자 너무도 적막하여 아내에게 남편도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불길함을 이기려 한다. 방문을 열자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들 개똥이는 울다 울다 목이 잠겨 기운도 없어 보인다. 김 첨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제 얼굴을 죽은 아내에게 비비면서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못지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하고 한탄을 한다. 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문득 영화 말모이에서 김판수 역할을 맡았던 배우 유해진이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며 구슬프게 울었던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