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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희곡을 넘나드는 풍자의 대가 채만식

by 깊은쌤 2024. 5. 8.

작품은 관찰자적 시선을 가진 중심인물이 주변 대상을 관찰하는 형식을 취했다.

우리 문학을 위한 극작가들의 역할

일제 강점기의 우리 극작가들은 민족어 말살의 위기 속에서도 창작을 계속하였다. 우선 무대 장치가 없는 전통적인 가면극과 같은 극 갈래 대신 실내의 무대 장치를 활용하는 사실주의 극을 도입하였다. 초기에는 기존에 있던 서구의 극을 번역하여 공연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우리의 극 문학 작품 창작이 활발해지면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진지하게 탐구하거나 현실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전형적인 사실주의 극을 올렸다. 또한 시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풍자극이나 객석을 울음바다로 만드는 신파극 등도 나타났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일제 강점기 극 문학은 살아 있는 민중의 언어를 극 속에 담아냄으로써 민족어를 보존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다수의 희곡 작품을 집필한 채만식을 한국 희곡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크게 보아 풍속극 작가였고 연극 사조상에서 본다면 리얼리즘 계열에 속하는 극작가였다. 더불어 한 시대를 충실하게 증언하고 그리는 데 있어 희곡 장르도 차용했던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작가가 극 갈래를 선택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채만식의 대표적 희곡으로는 당랑의 전설과 제향날 등이 있다. 물론 채만식은 태평천하와 탁류 그리고 치숙 등의 소설을 통해 우리 소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풍자의 대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해방 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소설을 통해 일제 강점기 말기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영웅모집

영웅 모집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그동안 상연되어 온 전통의 극형식과 다른 서구의 극형식을 지향한 작품이다. 당시의 낯선 소재였던 피에로를 모던 조선 외래어 사전에서는 이면의 비애를 감추고 표면만 웃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피에로는 공원을 지나는 다양한 인물을 관찰하면서 일제 강점하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우리 민중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또한 민족의식 없이 살아가는 인물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 과정 중 이 같은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에로는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민족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긍정적인 인물로 그린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에서 피에로는 흡사 약을 팔기 위해 광고하는 것처럼 영웅을 모집하며 엉뚱한 특전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영웅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풍자하다 풍자되기

작품의 배경은 현재는 탑골 공원으로 불리는 파고다 공원으로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공원이었다. 공원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는 희곡의 공간적 배경으로 적절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극은 장소가 제한적이고 소수의 인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을 다루면서도 장면을 자주 바꾼다거나 시선을 산만하게 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는 공원을 배경으로 설정해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이 제격이었다. 그리하여 소년과 전문학교 학생 그리고 신사와 노동자 등과 같은 다양한 인물이 자연스럽게 관찰의 대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피에로는 당시의 사회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리려고 한 작가의 의도가 잘 구현된 인물이다. 반면 극의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영웅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대목까지는 피에로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잘못된 지식 등을 읊으면서 신뢰성을 잃어 가는 대목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피에로가 발언했던 영웅들도그 당시의 영웅이라고는 하나 이들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아 믿지 못할 대상이라는 점을 풍자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중의 풍자가 이루어지는 구조인 것이다. 당시 생소한 캐릭터였던 피에로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여 그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1930년대 극 갈래의 주된 흐름이었던 사실주의 양식에 기대면서도 시공간을 자유롭게 구사하려는 다양한 형식적 기법과 실험을 시도했던 작가의 의식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현재의 모순을 관찰하고 필요충분할 것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마침내 글로써 성찰을 이룬다. 그것은 민족적 성찰인 것과 동시에 자기반성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엄혹한 시대의 작가들은 끝없는 민족적 함양의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으로의 계발을 도왔다. 작가 채만식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