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떠돌이 장꾼인 허 생원과 조 선달이 드팀전의 장을 거두고 술집에 들렀을 때 함께 다니는 동이가 계집과 농당을 치고 있었다. 화가 난 허 생원은 그의 뺨을 치고 쫓아냈지만 동이는 다시 돌아와 허 생원의 나귀가 발광하고 있다고 알려 준다. 허 생원은 나귀를 괴롭히던 장터 아이들을 쫓지만 아이들에게 왼손잡이라고 놀림만 당한다. 허 생원 일행은 대화 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허 생원은 달 밝은 밤이면 으레 봉평에서 맺은 기이한 인연 이야기를 한다. 메밀꽃이 활짝 핀 달 밝은 여름밤, 개울가에서 멱을 감기 위해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간 허 생원은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난다. 둘은 하룻밤의 기이한 인연을 맺었지만 성서방네가 빚을 갚지 못해 도주하는 바람에 그 뒤로는 만나지 못한다. 이야기를 마친 허 생원은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났으며 어머니 고향이 봉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 개울에 빠지게 된다. 허 생원은 동이에게 함께 제천에 가 보자는 말을 건넨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떠돌이 장꾼 허 생원이 혈육을 찾게 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자연적 배경을 인물들의 삶의 모습과 유기적으로 관련되도록 형상화하거나 여로형 구성을 통해 배경의 변화를 내용 전개와 밀접하게 관련짓고 있다. 또한 나귀나 왼손잡이와 같은 소재를 통해 인물을 형상화하고 결말을 암시하는 등 소설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관련지어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섬세한 감각의 타고난 예술가 이효석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양반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곳에서 평생의 벗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유진오를 만나 문학의 세계로 들어선다. 1925년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조선인 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문학 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즐겨 읽으며 문학관의 정립에 힘썼다. 재학 중이던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북도 경성으로 내려가 경성농업학교 영어 교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이효석은 1940년까지 해마다 십여 편씩의 작품을 발표하는 놀라운 창작열을 보였다. 이효석의 초기 작품은 동반자 문학적 경향을 띤 작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동반자 작가라 불렀다. 그러다 1932년 무렵부터 작품 세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 <메밀꽃 핍 무렵>, <산>, <들>, <수탉> 등 농촌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작품을 쏟아냈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고 1940년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이듬해 귀국했으나 곧 뇌막염에 걸려 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일 년 후인 1942년 뇌막염이 재발, 그 길로 영영 세상을 뜨고 말았다.
소설의 무대
이효석의 작품 속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거기에는 자신이 살던 마을과 읍내에 대한 기억, 온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꽃과 나무에 대한 느낌,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 등이 아주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다양한 글들 속에 나타나 있는데 특히 <메밀꽃 필 무렵>, <산>, <들>, <산협>, <개살구>, <고사리> 등의 작품은 고향 봉평면을 작품의 배경이나 소재로 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명작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고향의 지명과 풍경들이 거의 실제 그대로 묘사되고 있어 아주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사실 지금도 이효석의 고향에서는 아주 흔하게 메밀밭을 볼 수 있어서 밤이면 소설에서처럼 메밀꽃이 달빛을 받아 마치 소금을 뿌린 것처럼 환하게 빛난다고 한다. 가산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효석 문학관은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향 봉평 사람들의 정성으로 세워졌다. 전시실은 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그의 서재를 재현한 창작실과 옛 봉평 장터 모형 그리고 문학과 생애를 다룬 영상물 및 어린이용 영상물 등을 통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