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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과 영화 판문점 이렇게 만났다

by 깊은쌤 2024. 6. 21.

소작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지주들의 태도는 스스로 몰락하게 하는 함정이 되었다.

 

분단 문학의 새 지평을 열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 대결은 좋지 않은 결과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해방 전후의 이념 대결은 결국 우리 민족에게 분단국가라는 큰 멍에를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해방의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된 자주독립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압력에 의한 좌우익 대결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결국 우리 민족은 분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생산적인 논쟁을 넘어 이념 대결은 도리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구속하고 사회 발전에 제약을 가져왔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대하 역사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사회 변화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원고지 1만 6천5백 장의 방대한 분량 속에서 60명이 넘는 주요 인물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물들이 작품에 등장합니다. 작가는 다양한 군상을 통해 한동안 반공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던 광복 직후의 역사적 상황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밀하게 파헤쳤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1948년 여수 순천 십일구 사건이 종결되고 1953년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상황을 소설로 끌어들여 민족 분단의 배경을 거시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의 실상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결코 이념의 논쟁만으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념의 문제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구체적인 인물들이 지닌 삶의 조건과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실재하는 역사의 흐름 등을 통해 형상화하였습니다. 또한 민중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우리 민족 내부의 모순을 표출함으로써 지식인 중심의 역사 인식 한계 역시 극복하고자 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굵게 보는 태백산맥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진압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곧 퇴각하고 염상진이 조직을 정비합니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싸우고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줄이려 하지만 빨갱이로 몰려 구속됩니다. 이승만 정권이 농지 개혁에 실패하자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가는 상황과 달리 염상진 등 좌익 반란군은 토지 개혁을 실시해 농민의 환영을 받습니다. 벌교를 떠나 서울로 간 김범우는 반민 특위 사건과 김구 암살 사건을 맞이하게 되고 소작농들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의 농지 개혁법이 발표되면서 더욱 분노합니다. 6.25 전쟁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합니다. 김범우는 인민군이 패한 후 미군에게 붙들려 통역관이 되지만 탈출하여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고 인민군에 자진 입대합니다. 이후 벌교에서 염상진이 다시 입산하고 많은 소작인들 역시 그와 함께 입산합니다.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은 투쟁을 계속하긴 했으나 대부분 최후를 맞이합니다. 김범우는 반공 포포로 위장하여 고향에 돌아옵니다. 염상진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는 수많은 전투에서 패하고 염상진을 수류탄으로 자폭합니다.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은 새로운 투쟁을 다짐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판문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년 후 전쟁의 당사자들은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공산군 측과 연합군 측은 종전을 위한 대화 장소가 필요했고 미군기지가 있던 문산과 개성의 중간지점인 판문점을 연합군이 제안하면서 1951년 10월 말부터 판문점에서의 협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세 끝날 줄 알았던 판문점 협상은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문제로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판문점을 통해 공개됩니다. 영화는 당시의 정전협상 장면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던 군인들의 모습들까지 우리가 몰랐던 판문점 옛 모습 그대로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영화 판문점의 제작을 위해 독립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는 3년이 넘게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과 일본공문서관 그리고 유럽 각지의 국가기록관 등에서 미공개 영상파일 만여 건과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수집해 역사적 사실을 영화 판문점 안에 담았습니다. 역사적 사실들이 고스란히 담긴 맥락의 영화가 자칫 어려울 수도 그리고 불편할 수도 있었음에도 우리가 좀 더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담백하고 차분한 어조의 내레이션 덕분일 듯합니다. 배우 박해일은 이번에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절제된 내레이션 덕분에 관객은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습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좌우익 대립과 이념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 태백산맥과 더불어 일련의 고단한 과정을 통해 제작된 영화 판문점은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우리에게 그 과제를 던져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