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굵은 줄거리
1951년 1.4 후퇴 때 수지는 피란길에서 은 표주박을 수인에게 건넨다. 온통 관심이 표주박에 쏠린 수인의경황없는틈을 타 동생 수인의 손을 일부러 놓아 버린다. 수지는 오빠 수철과 함께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어엿한 중산층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고아원에서 오목이라는 이름의 가난한 여자가 자기의 친동생 수인임을 알게 된다. 동생을 버린 죄책감이나 혈육에 대한 반가움보다 자신이 친언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지난날 자신의 죄가 드러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렇기에 이후 익명의 복지가로서 오목을 도와주기만 한다. 한편 오목이 수지의 옛 애인인 인재와 만나게 되자 수지는 질투심으로 그 둘을 헤어지게 만든다. 같은 고아원 출신인 보일러공 일환과 오목은 살게 된다. 일환은 오목이 낳은 아이가 인재의 아이임을 짐작하면서 오목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오목은 고통의 세월을 보낸다. 결국 오목은 긴 가난과 질병 끝에 쓰러지고 죽음을 앞둔 오목은 감사의 표시로 수지에게 은 표주박을 건넨다. 수지는 그녀 옆에서 무릎 끓고 참회하지만 오목은 이미 죽은 뒤였다.
작가가 밝히는 작품의 창작 의도
발단은 1.4 후퇴에서 비롯됐지만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전쟁의 비극이 아니라 풍요의 비극이었다. 폐허에서 떨치고 일어나 60년대의 악착같은 생존 경쟁과 70년대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다. 이 시기를 거쳐 80년대 국민의 반수 이상이 중산층을 자처하게 된 안정과 풍요가 얼마나 냉혹한 이기심과 배타성을 가지고 있나를 보여 주고자 했을 뿐이다. 나는 수지를 조금도 특별한 악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중산층 이상의 안이하고 우아한 생활이 보편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악을 보여 주고자 했을 뿐이다. 이 소설에서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것 못지않은 완강한 힘으로 잘 살게 된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것은 풍요의 울타리다. 그리고 안일주의의 무자비한 모르는 척 등을 집요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은 모두 작가의 몫이다. 독자의 몫은 그것을 넘어서 정말 있어야 할 삶의 모습을 꿈꾸는 것이 되었으면 얼마 좋을까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1987년 중앙일보사 오늘의 역사 오늘의 문학 30에 기재된 작가 박완서 인터뷰 중의 일부다.
작품에 관한 깊은 이해
작품의 제목은 반어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51년 겨울. 언니 수지는 배고픔 때문에 동생 오목의 손을 놓았고 오목은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그해 겨울은 수지네 가족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매우 춥고 힘든 계절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고난과 절망의 시대를 반어적으로 나타냄으로써 도덕적 규범과 가족주의적 윤리관이 무너지고 있는 당시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해 겨울은 허위의식을 지닌 채 이기적으로 살아가던 수지가 드디어 오목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침으로써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는 때이다. 제목에는 이러한 장면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녹아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의 제목이 부드러운 겨울인 것으로 볼 때 이 해석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근대화 과정에서 속물화된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와 시대적 배경이 닮은 나목이 있다. 모두 작가 박완서의 작품이다. 6. 25 전쟁의 혼란한 서울을 배경으로 화가 옥희도의 삶과 나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 낸 인물들의 초상을 만나볼 수 있으며 황폐한 상황마저도 고목이 아닌 나목으로 형상화하는 작자의 희망적인 인식을 파악할 수 있음을 안내한다. 황순원의 너와 나만의 시간은 6.25 전쟁이 배경인 동시에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주제가 유사하다. 전쟁 중 낙오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세 인물을 중심으로 각자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보여 주는 소설이다.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존재 의미와 삶의 의지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끌어내고 있어 윤리적 가치 선택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고난의 역사다. 개화기 이후 한국의 문학이 발전과 동시에 깊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엄혹한 현대사가 그 한몫을 제대로 해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많은 것을 얻었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었으며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닌 것을 얻었다. 이렇듯 역사의 질곡이 우리를 훌륭한 작품 속으로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