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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by 깊은쌤 2024. 7. 28.

전쟁은 인간이 이토록 비정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극단의 장치다.

삶과 죽음의 실존적 가치

주인공 '그'는 수색대를 이끌고 적의 배후 깊숙이 침투했다 본대와 연락이 끊어지면서 소대원을 이끌고 남하하게 됩니다. 적을 피해 산을 타고 남하하는 과정 중 잦은 전투와 굶주림으로 인해 대부분의 소대원을 잃어버리기에 이릅니다. 추위나 배고픔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이 과정에서 결국 선임 하사와 '그'만 남게 됩니다. 일본군에 소집되어 남양 전투에도 종군하는 등 많은 전쟁에 참전했던 그리하여 군대 생활이 무엇보다 재미있다던 선임 하사도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 '그'는 몸을 숨겼던 민가에서 적에게 붙잡혀 죽게 된 한 포로를 구하다 부상당한 채 적들에게 사로잡힙니다. '그'가 구하려던 포로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기계나 도구가 아닌 생명체인 인간임을 느꼈다면서 남쪽을 향해 걷다 피살되고 맙니다. '그' 역시 그 포로가 그랬듯 사수가 뒤에서 겨누고 있는 남쪽으로 난 길을 걸으며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오상원의 유예는 6. 25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전투에서 낙오된 주인공 '그'가 포로가 되어 심문을 받고 총살형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소설입니다. 소설은 짧은 문장과 현재형의 서술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겪는 인간의 내면적 고뇌와 전쟁의 참상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인간적 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그리고 참혹함과 더불어 전후 세대가 겪는 실존과 불안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설 유예는 포로로 잡혀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은 극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탐색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소외되고 단절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 그리고 삶과 죽음 등의 실존적 가치에 몰두하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이 사회적. 역사적 배경보다는 죽음에 임하는 태도 자체나 극한 상황에서도 지켜야만 하는 인간적 가치에 주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타인의 죽음이나 사형 집행과 같은 일들을 일상적으로 여기는 인물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전쟁 상황의 비정함 또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무의미성과 추악함

'나'는 본대에서 보충병으로 차출되어 작전 지역인 R. POINT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나를 포함하여 아홉 명의 병사가 맡은 일은 오래된 탑을 적이 옮겨 가지 못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다음 날 다리를 지키던 미군들은 철수하여 작전 지역에는 우리 부대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작전이 변경되어 초소 주위의 배수로를 최후 저항선으로 삼아 적의 기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 10시쯤 적의 사격으로 시작된 격렬한 전투 속에서 적의 인질이 된 소총수와 통신병 그리고 나이 어린 분대장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은 부대원은 탈진하여 굳어진 시체 사이에 넘어져 졸기 시작합니다. 다음 날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 진주한 미군은 캠프와 토치카를 지을 요량으로 불도저 한 대로 바바나밭을 밀어 버리고 탑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작가 황석영의 단편은 전쟁의 무의미성과 추악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전쟁의 무의미성은 탑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폭로됩니다. 탑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또 희생되지만 정작 지켜낸 탑이 미군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상황은 전쟁을 통해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와 강대국의 논리로 제3세계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부조리함을 느끼게 합니다. 한편 이 작품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전투 상황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그려 내었으며 우리 소설의 지평을 세계사적 문제로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후 한 명의 생존을 위한 8명의 희생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혼란스러운 전쟁터에서 밀러 대위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바로 라이언가 4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 제임스 라이언 일병을 찾아 무사히 데려오는 것입니다. 라이언 가의 어머니가 세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부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특별 임무를 내린 것입니다. 밀러 대위는 7명의 정예 병사들과 함께 라이언 일병을 찾아 나서지만 전쟁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 임무 수행은 쉽지 않습니다. 험난한 여정 속에서 동료들을 잃어가던 밀러 대위는 임무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과연 한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밀러 대위는 이러한 고뇌 속에서도 임무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결국 밀러 대위는 라이언 일병을 찾아내지만 라이언은 동료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밀러 대위는 라이언 일병에게 동료들의 희생을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설득을 하지만 라이언 일병은 쉽게 마음을 바꾸지 못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기본적으로 라이언이 집에 돌아가기까지의 구출팀이 겪은 일을 늙은 라이언이 회상하는 구조이지만 실제로 라이언이 회상할 수 있는 부분은 구출팀과 만난 후뿐입니다. 그전까지 라이언은 구출팀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라이언의 회상이 오롯이 영화로 표현됐다고 이해하기보다 주제 의식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영화적 장치로서 '회상하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다만 구출팀 중 생존자가 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이 전역하기 전의 라이언에게 그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줬다고 가정한다면 앞뒤가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2명의 생사여부는 사실 확실치 않습니다. 노르망디 전투 이후에도 제2레인저 대대는 프랑스의 브레스트 전투 및 휘르트겐 숲 전투에 참전했기 때문입니다. 업햄이 속해 있던 제29 보병사단의 경우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사상률이 무려 200%가 넘었지만 그럼에도 업햄은 비전투병이었으니 무사히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 해군의 경순양함 USS 주노에 탑승한 수병 설리번 5형제가 태평양 전쟁 때 과달카날 해전에서 USS 주노가 격침되면서 전부 전사해 버린 비극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건 이전부터 미군에는 가족 관계인 장병들이 같은 함정에 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더욱 철저히 지켜지게 됩니다. 극 중 구출부대가 파견됐던 것은 라이언 일병(극 중 또 다른 주인공이자 제101 공수사단 소속의 공수부대원)이 있던 D+7일 전후의 노르망디 지역은 산개된 공수부대 중 약 7~80%의 대원이 궤멸당하고 생존한 부대원들마저 모두 모이지 못한 채 계속적으로 희생당하는 극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이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 살아 있다면 어디 있는 것인지 제대로 된 확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구출 부대라는 것이 편성되어 파견된 것입니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즉 오버로드 작전의 성공은 D+30일에도 성공을 겨우 확신하느냐 마느냐 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오버로드 작전 자체가 파리 수복까지가 작전 계획인지라 상륙한 게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극 중 라이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2차 대전 당시 미 육군 제101 공수사단 501 연대 3대대에서 복무한 프레더릭 닐런드(Frederick Niland) 병장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짧게 언급되기도 합니다. 영화 속 라이언과 비슷하게 닐런드 4형제들은 설리번 형제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각각 다른 부대에 흩어져 복무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형제 셋이 태평양 전선 뉴기니와 노르망디의 유타와 오마하에서 전부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 남은 닐런드는 본토로 귀국 조치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와 달리 감동적인 구출작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부에서 귀국 조치를 명령하자 프레데릭 닐런드는 전우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군인 정신은 영화에서처럼 보여 줍니다. 그 후 아버지까지 설득하러 와야 했습니다만 결국 닐런드가 속한 501 연대의 군종 신부가 닐랜드의 집으로 이들 형제의 사연을 편지로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귀국 조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