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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 3 사건의 참상과 민중의 수난

by 깊은쌤 2024. 7. 30.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술을 통해 과거의 비극이 만든 상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 주고 있다.

순이 삼촌

서울 큰 회사의 부장 자리에 있는 나는 8년 만에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여하러 비행기를 타고 고향 제주도 서촌으로 갔습니다. 일곱 살 때 병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4. 3 사건 전에 아버지는 경찰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해 버렸기 때문에 큰아버지 밑에서 사촌과 함께 자랐으며 이곳 뭍으로 건너와 공부하고 직장을 얻어 그럭저럭 15여 년을 보냈습니다. 8년 만에 찾아간 고향, 제삿날이기에 친척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쉽게 확보됩니다. 그런데 그 친척 중에서 꼭 있어야 할 순이 삼촌이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이 고장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삼촌이라 부르며 가까이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순이 삼촌은 나이 많은 여인으로 불과 두 달 전까지 1년 간 나의 서울 집에서 식모처럼 밥을 짓고 집을 봐주다가 어느 날 문득 내려간 터인데 그새 죽었다는 것입니다. 순이 삼촌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야기는 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나의 집에 와 있을 적의 순이 삼촌의 여러 기행이 차례차례 밝혀집니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데도 밥을 많이 먹는 식모라고 하여 자기를 흉본다며 화를 내고 심지어는 생선 구운 석쇠까지 방 안으로 가져 들어와 생선 부서진 것이 자기 잘못이 아님을 하나하나 입증하는 결벽증을 보이는데 이것은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녀를 데리러 온 사위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이런 기행이 모두 환청 때문임으로 판명됩니다. 있지도 않은 소리를 들었다고 우기는 이런 신경 장애의 원인을 차곡차곡 살펴 나가면서 우리 모두는 1948년의 제주도 4. 3 사건의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

30여 년 전 그 해 음력 섣달 열여드레, 그날은 유달리 바람 끝이 맵고 시린 날이었습니다. 별안간 밖에서 연설 들으러 나오라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군인들 수십 명이 퍼져 다니서 모두를 향해 재촉하였습니다. 군인과 순경 그리고 공무원 뒤이어 대동 청년단 및 국민회의 가족이 가려진 후 나머지 마을 사람들과 분리되었습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고 그때 군중 속에서 별안간 불이 났다고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마을엔 삽시간에 무서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동요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군인들은 총으로 위협했습니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돼지 몰 듯하며 그들을 우리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면 잠시 후 일제 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차례차례 죽어 갔습니다. 작전 명령에 의해 소탕된 것은 대부분 노인과 아녀자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주도 부락민들이 5. 10 선거 때 몇몇 공산주의 골수분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선거를 거부했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유로 대부분의 남정네들은 밤에는 폭도에 쫓기고 낮에는 군경에 쫓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다 결국은 할 수 없이 굴속으로 도피를 했던 것입니다. 순이 삼촌도 행방을 알 수 없는 남편 때문에 도피자들 틈에 끼어 있다가 우리 할머니에게 맡겨 두었던 오누이 자식을 데리러 내려왔던 와중에 그만 화를 당한 것입니다. 군경 측의 무리한 작전과 이념에 대한 맹신이 빚어낸 비극적 사건이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짐에 따라 마을을 태우는 불빛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날 밤 사람들은 한길을 피해 모두 교실로 몰려 들어가 불안한 밤을 새웠습니다. 밤중에 우리 모두는 두 번 크게 놀랐습니다. 한 번은 대밭이 타며 터지는 소리를 총소리로 잘못 알아들어 놀랐고 또 한 번은 죽은 줄만 알았던 순이 삼촌이 살아 돌아와 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렸을 때였습니다. 삼촌은 총살을 당하기 전에 기절을 한 상태였어서 다행히도 살아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은 그 후 경찰에 대한 심한 기피증이 생겼습니다. 메주콩 사건으로 결벽증까지 생긴 데다 나중에는 환청증세까지 겹치게 된 것입니다. 그날의 상처가 순이삼촌만큼 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평생 그날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순이 삼촌은 자식이 둘이나 묻힌 그 옴팡 밭에서 사람의 뼈와 탄피 등을 골라내며 30년을 과부로 살아오다 그날의 일을 환청으로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살육의 현장에서 독약을 먹고 자살을 하기에 이릅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30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 일을 고발하지 못함은 섣불리 들고 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며 한 달 전에 자살한 순이 삼촌의 삶은 이미 30여 년 전의 시간 속에서 정지돼 버린 유예된 죽음이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제주 4. 3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나'가 '순이 삼촌'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친척 어른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30년 전에 있었던 마을의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사건으로 두 자식을 잃고 평생을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려 온 '순이 삼촌'의 사연을 통해 당시 제주도에서 발생됐던 비극적인 사건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오랫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었던 역사적 사건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첫걸음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