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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리에서 난 이렇게 성장했다

by 깊은쌤 2024. 7. 26.

엄마의 다짐을 명심으로 받아 당돌하게 세상에 응대하는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초조를 겪으며 성장하는 나

아버지의 취직으로 인해 중국인 거리로 이사하는 주인공 '나'의 가족은 트럭을 쪼개 타야 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사한 적산 가옥의 2층에는 양갈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사 간 중국인 거리의 거무죽죽한 공기 속에는 석탄 가루가 가득했습니다. 선창 주변의 석탄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현금과 같다는 것을 나를 비롯한 모두는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철 검정 강아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석탄가루는 포격에 무너진 담벼락과 함께 전쟁이 일어났었다는 것도 알려 주었습니다. 새로 집을 짓는 데 쓰이는 노란 해인초 냄새는 주인공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주인공 '나'가 이사 간 중국인 거리는 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난한 도시입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주인공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양갈보 매기 언니는 남자 친구인 흑인 미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장애를 가진 매기 언니의 딸 제니는 고아원으로 보내집니다. 매기 언니가 살해된 현장에서 주인공 '나'는 턱을 달달 떨어 대지만 담담한 어조로 사건을 전달합니다. 이는 온전히 성숙하지 못했던 어린 '나'의 상태도 보여 줍니다. 한편 중풍으로 쓰러진 주인공 '나'의 할머니는 당신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당신의 남편에게로 보내져 두 계절만에 부음을 들려줍니다. 주인공 '나'는 슬픔과 함께 공허함을 비롯 허무함을 느낍니다.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주인공 '나'는 삶의 유한성을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 '나'가 6학년이 되자 어머니는 여덟 번째 아이를 출산합니다. 어머니가 산고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주인공 '나'는 중국인 청년이 건넨 종이 꾸러미에 담긴 뭉치를 끌러 봅니다. 속에 든 것은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세 가지 색의 물감을 들인 빵과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만 한 등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 층 벽장 속으로 숨어 들어가 초조를 겪습니다. 이는 주인공 '나'가 중국인 거리에서 성장했음을 상징합니다. 주인공 '나'의 성장은 중국인 거리를 배경으로 여러 여성이 겪는 갖가지 고통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여성적 자아를 그리는 한편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여성으로서의 삶

물질적인 풍족함 때문에 주인공 '나'와 치옥이의 부러움을 샀던 매기 언니는 결국 미군 남자친구에게 살해를 당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이면에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 하는 제니가 해당 사건으로 인해 연신 딸꾹질을 할 만큼의 비극적 현실을 느끼게 해 준 이 사건은 주인공 '나'를 비롯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할머니는 주인공 '나'의 할머니가 아닙니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 할머니는 새끼 고양이를 낳은 어미 고양이에게 미역국까지 먹입니다. 그러나 결국 새끼 고양이를 잡아먹도록 조종하듯 같은 말을 후렴 하던 할머니는 그렇게 평생 혼자 살다 중풍에 걸려 죽기 직전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게 됩니다. 작가는 할머니를 통해 불행한 결혼이 주는 삶의 아픔을 주인공 '나'를 통해 전합니다. 어머니는 여덟 번째 출산을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숙명인지 아니면 여자의 숙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주변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어른으로서 성장해 갑니다.

차이나 타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성사됩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 회담이 개최되었고 진통 끝에 1953년 판문점에서 중국군과 북한군 그리고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하면서 비로소 정전 협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도시 하층민이 살아가던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 후 1984년 현 중구 선린동 일대가 조계지 즉 외국인 거주지로 지정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이후 1902년 첫 화교 초등학교가 설립되는 등 한국 화교의 중요 정착지로 발전했습니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차이나 타운은 서울의 대림동과 같이 부정적 모드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누아르 영화 차이나타운은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소설 중국인 거리처럼 그 공간적 배경이 인천의 차이나타운입니다. 소설 중국인 거리의 주인공 '나'는 흡족한 머리 모양이 되지 않자 이발쟁이를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며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 것들을 향해 나를 드러냅니다. 영화 속 일영은 풋풋하게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를 20대 여성의 다른 삶을 꿈꿔보려 격렬하게 맞서 봅니다. 형태나 과정이 다를 뿐 두 인물이 보여주는 서글픔의 결은 같습니다. 열악하고 궁핍했던 시절은 그녀들을 이토록 날 서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주인공들의 열악했던 시절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각인되어 아픔을 전할 때 활용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도시의 슬픈 역사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가 돌아봐야 할 우리의 상처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