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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청계선 주변 서민들의 소소한 삶

by 깊은쌤 2024. 6. 27.

창수의 모습에서 시골 출신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는 도시 중산층의 동경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민들의 1930년대 서울살이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기본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며 특별한 주인공 없이 청계천 주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나열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물에게 일정한 거리감을 갖고 관찰하는 듯한 서술자를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재봉이의 눈에 비치는 주변 사람의 모습은 상당히 객관적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우선 작품 속 인물들 중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떨고 이발소집 사환 재봉이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으며 민 주사는 쭈글쭈글 늙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짓지만 그래도 돈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급 하나꼬의 일상과 한약국집 사환 창수의 어제와 오늘도 소개됩니다. 또 이쁜이가 결혼을 함에도 이쁜이를 짝사랑하는 점룡이는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신전집이 몰락하고 민주사의 작은집인 안성집의 외도가 이어지며 민주사는 선거에서도 참패합니다. 금순이와 동생 순동이가 만나고 재봉이와 젊은 이발사 김 서방이 말다툼을 했으며 이쁜이는 결국 친정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재봉이는 이발사 시험을 보려고 하는 등의 내용이 소설 속에서 펼쳐집니다. 이렇듯 작품은 1930년대 청계천 주변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전지적 시점과 동시에 객관적인 거리감으로 서술한 세태 소설입니다. 여인들의 집합소인 빨래터와 남성들의 사교장인 이발소라는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70명의 평범한 인물들을 모아 모자이크식으로 제시하며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품은 상이한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여줌으로써 시간성과 공간성을 극대화하였고 이를 통해 당시 서민층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서사화하여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특정 인물을 확대해 보여주는 클로즈업 기법과 카메라가 이동하며 촬영하는 듯한 카메라아이 기법 등의 활용은 주요 사건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려냈다는 평가 또한 받았습니다.

카메라아이 기법

1903년 활동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들어온 이래 영화와 문학은 상호적 관계로서 그 영향을 서로 긴밀하게 주고받았습니다. 영화가 춘향전과 같은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면 소설은 영화적 기법을 도입하여 새로움을 추구하였습니다. 영화에서 자주 쓰이던 기법들 즉 특정 대상을 확대해 보는 클로즈업 그리고 카메라가 이동하는 듯한 카메라아이(camera-eye) 기법 등이 1930년대 소설 속에 활발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카메라아이 기법은 본래 영화의 촬영 기법 중의 하나로서 카메라를 특별한 의도 없이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찍는 것을 가리킵니다. 소설 천변풍경의 이러한 기법은 청계천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별한 연관성 없이 나타나는 인물과 사건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작품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창수의 시선에 따라 서울 도심 풍경이 묘사되고 있음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천변풍경에 관한 생각

<소설 천변 풍경에서 청계선은 근대와 전근대, 도시와 시골이 만나는 접경으로 냉혹한 이익의 추구와 끈끈한 인간애가 공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창수와 금순이, 만돌 어멈 등의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시골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는 첫 무대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을 동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슬픔에 주저앉지 않도록 하는 웃음으로 1930년대 중반의 시대 현실을 초극하는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1996년 3월 6일 자 한겨레 신문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소설 속 1930년대 청계천은 전근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아녀자들이 천변에 나와 빨래를 하는 풍경은 전근대적이지만 빨래를 하는 데 있어 돈을 내고 하는 것은 분명 이윤을 극대화하는 근대적인 풍경으로 보입니다. 또 청계천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안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이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창수처럼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람 또한 있습니다. 창수는 재봉에게 "월급도 못 받는 이발소에 붙어 있지 않으면 어디 있을 데가 없니?"라고 하면서 노동에 대한 대가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는 현실의 부당함을 창수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지적합니다. 언뜻 창수는 순수한 시골 소년이 돈만 밝히는 악인으로도 보이지만 이를 달리 보면 전근대와 근대의 가치가 혼재되어 있는 당대 사회의 변화를 잘 읽고 대처하는 근대적 합리성을 갖춘 인물로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아이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으며 얼음 조각이며 과자 부스러기 등을 공짜로 준다든가 또는 값을 깎아 준다든가 하는 지점에서는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나누는 인간애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결국 작가는 여러 개인들의 삶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드러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집요하게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끈끈한 인간애가 여전히 남아 있는 혼란의 상태를 창수의 삶과 그 밖의 시선을 통해 표현한 것입니다.